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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9c7f4913083a5d9b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한반도의 호랑이</p>
<p>처음엔 함께 사람이 되려고 동굴에서<br>곰이랑 쑥과 마늘을 먹으며 경쟁을 했지만<br>결국 배고픔을 못 참고 호랑이가 뛰어 나간 이래로<br>한반도에서 호랑이 피해는 항상 극심했습니다</p>
<p>오죽하면 중국에는 이런 조선관련 속담도 었었습니다<br>"조선 사람들은 1년 중 반은 호상문상을 다니고,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".</p>
<p>호랑이의 습성은 원래 산속에 사는 동물이 아닙니다<br>평지와 물가 주변에서 서식하는 동물이죠<br>그렇게 들판을 돌아 다니다 보면<br>당연히 농사 짓고 사는 농부도 보이고<br>마을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하니<br>그럼 호랑이가 잡아 먹곤 했던 것입니다.</p>
<p>호랑이의 왕성한 식사는 지역을 가리지 않았기에<br>한반도 전역에 걸쳐 남쪽 해안가 목포와 진도까지도<br>호랑이 피해가 극심했다고 합니다.</p>
<p>호랑이라는 말의 어원은 여러설이 있으나<br>보통 범을 뜻하는 호(虎)와 이리를 뜻하는 랑(狼)을 붙여<br>사나운 맹수 전반을 지칭했던 것으로 봅니다</p>
<p>범은 호랑이의 순 우리말로<br>과거엔 호랑이(갈범)+표범 모두를 지칭했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37cefb2531461932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요놈이 호랑이 즉 갈범이고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35fdbf9a638e3741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표범은 이렇게 생겼습니다</p>
<p>어차피 사람 물어가서 잡아 먹는건 매한가지라<br>구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</p>
<p>호랑이를 잡는 것과 표범을 잡는 것은<br>그 포상금의 액수 부터가 달랐습니다.<br>조선도 나름 구분은 했죠</p>
<p>흔히 말하는 호랑이 피해는<br>호랑이와 표범 모두에게 입은 피해를 말합니다.</p>
<p>주로 조선 초기에는 호랑이의 피해 비율이 컸고<br>호랑이가 많이 사냥되어 개체수가 줄자<br>조선 후기에는 표범의 피해 비율이 늘었습니다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34c6b806b04a32a0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조선 시대는 물론 조선 말 개화기에 이르러서도<br>한반도에서 호랑이에 대한 피해는 여전했습니다.</p>
<p>서양 외국인들이 증언 하길<br>"조선을 홀로 여행하는 것은 호랑이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,<br>조선 사람들도 밤에 호랑이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"</p>
<p>한반도의 호랑이는 PC주의를 존중하여<br>결코 인종 차별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f14c0b91f0f041b5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때문에 한반도의 산 자락에는<br>언제나 이런 돌 무더기가 많았습니다<br>깊은 산 자락 마다 항상 수 백기 씩 있었죠<br>마치 소원을 비는 귀여운 돌 탑 같이 보이지만<br>그 이름이 조금 다릅니다.</p>
<p>이건 "호식총" 이라고 부릅니다.<br>호랑이 식사 무덤이란 뜻으로<br>진짜 돌로 된 무덤입니다.</p>
<p>호랑이에게 물려가 잡혀 먹히고<br>두개골과 뼈만 남은 희생자 잔해를 보게 되면<br>사람들이 수습해서 돌로 매장에 주었기 때문입니다.</p>
<p>당연하게도<br>호랑이 피해는 산과 시골에만 국환 된게 아닙니다<br>호랑이는 수도인 한양성에도 그냥 나타났고<br>심지어 궁궐까지 침범했을 정도였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77137c61b7818c81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고사성어로 삼인성호(三人成虎)라는 말이 있습니다<br>성 안 한복판에 호랑이가 출몰 할 리가 없지만<br>사람들 3명이 그렇게 호랑이를 외치면<br>불가능한 거짓말도 결국 믿게 된다는 고사입니다.</p>
<p>호랑이가 시내에 출몰 할리가 없잖아 ㅋㅋㅋ<br>이 뜻이죠</p>
<p>근데 조선에서 도성 안에 호랑이가 출몰 하는 건<br>그건 불가능한 거짓이 아니라 일상 이였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b568259a631ba0f5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시절<br>개성에서 한양으로 잠시 천도를 했는데<br>얼마 못 가서 다시 개경으로 돌아갔습니다.</p>
<p>이유는 한양에 호랑이 피해가 너무 극심해서<br>잡아 먹힐 까봐 못 살아서 였습니다.</p>
<p>한양성과 접한 인왕산에 사는 호랑이가<br>수시로 경복궁, 창덕궁, 종묘에 출몰해서<br>경비를 서는 근위병을 물어 잡아 먹곤 했습니다.</p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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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b55fd87b4732dbdf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조선 태종 시절에는 아예<br>경복궁 근정전 앞 뜰에 호랑이가 출몰했고<br>선조 시절에는 호랑이가 창덕궁에 놀러 와서<br>호랑이 아기를 낳고 둥지까지 틀었으니<br>왕이 이 소식을 듣고는 놀라 대노했습니다</p>
<p>영조 시절에는 한양 성내에 호랑이가 출몰하여<br>도성 안의 사람들을 잡아 먹는 지경이 이르니<br>이에 신료들과 대책 회의를 했음에도<br>딱히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be3d4f35d40ca167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그래도 고려 시대와 다르게<br>조선은 전국의 모든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 했고<br>전국의 관리들은 호랑이를 잡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</p>
<p>호랑이를 잘 잡으면 선정을 베푼 것이고<br>호랑이를 못 잡으면 업무에 소홀했다고 파직 했죠</p>
<p>백성이 호랑이 5마리를 잡으면<br>나라에서 종 4품 관직을 내렸을 정도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a25211262a58721f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조선 시대에는 전문 호랑이 사냥 부대를 만들어<br>전문적으로 운영하였습니다</p>
<p>이를 "착호군" 이라고 합니다</p>
<p>그리고 착호군은 조선에서 유일하게 왕의 명령 없이<br>언제든지 군을 움직여 출병할 수 있는 부대였습니다.</p>
<p>왕조 시대에 왕명이 없이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<br>그 자체가 큰 역모의 위험을 만드는 것임으로<br>절대로 금기 시 되는 행위입니다.</p>
<p>실제로 인조 반정도 이런 착호군을 가지고<br>호랑이 사냥을 위해 출병한다며 거짓 보고 한 뒤<br>군사를 움직여 도성을 공격해 반정에 성공한 케이스죠</p>
<p>이런 엄청난 위험성을 가진 부대임에도<br>인조 반정 이후에도 착호군은 여전히 운영되었고<br>또 여전히 왕명 없이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</p>
<p>그 만큼 조선에서는 호랑이에 의한 피해가<br>너무 극심했고 또 다급했기 때문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5a143ca788da7f69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이런 호랑이에 의한 피해가 사라지게 된 것은<br>일제 강점기 시절을 거치면서 입니다.</p>
<p>일본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습니다.<br>한반도를 침략하기 위해 건너 왔는데</p>
<p>흐미~산이랑 길에 무슨 괴물이 살고 있네요...</p>
<p>일본은 한반도를 식민화 하면서<br>호랑이 때문에 방해를 받을 것을 우려해<br>조직적으로 호랑이 멸종을 장려했습니다.</p>
<p>이와 더불어 근대 시기가 되면서<br>호랑이 사냥법은 보다 효율적으로 변했고<br>사냥용 무기도 크게 발전했습니다.</p>
<p>과거 갑옷 입고 화살과 칼로 잡던 것이<br>점차 화승총을 이용한 전문 포수로 바뀌었고<br>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소총과, 자동권총<br>심지어 다이너마이트까지 동원되었죠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710-c95e3cb4e0a38b7d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근대 시대가 되면서 화력이 보급상자에서 먹은<br>엄청나게 쎈 3티어 무기로 바뀌자<br>호랑이 사냥도 굉장히 수월해 졌습니다.</p>
<p>이제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<br>호랑이는 그 자체로 엄청난 돈이 되었기에<br>너도 나도 호랑이 사냥에 뛰어 들어 사냥하는<br>돈벌이 수단이자 횡재의 대상이 됩니다</p>
<p>호랑이는 수컷 한마리가<br>100km 반경을 영역으로 서식한다고 합니다<br>이미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<br>호랑이 서식지가 줄어 들면서 개체수도 줄었죠<br>점점 호랑이들이 멸종해 가던 중이었는데<br>인간들이 그 마지막 쐐기를 박은 것이죠</p>
<p>그렇게 1924년이 되면<br>한반도에서 호랑이는 완전히 멸종 되게 됩니다.<br>(북한 함경도 부근에 아직 남아 있단 이야기가 있습니다)</p>
<p>호랑이를 다른 말로 산군(山君)이라 합니다<br>한반도 산에서 일짱 먹으신 임금님이죠</p>
<p>최상위 포식자 호랑이가 사라진 한반도 산에는<br>듣보잡 멧돼지와 고라니가 패왕이 되었고<br>곰의 후손들 차량을 드리 박으며<br>시비를 거는 중입니다.</p>
<p>끝.</p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