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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f48492685035bad3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https://www.dogdrip.net/699668019<br>중국역사 최초의 왕조 상나라 이야기.</p>
<p>상나라를 멸망 시키고 등장한 주나라 이야기입니다.</p>
<p>기원전 11세기 경 상나라는 멸망하고<br>주나라가 중국 중심부를 장악하게 됩니다.<br>이는 놀랍게도<br>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내용입니다.</p>
<p>은허 유적을 비롯한 중국 내 발굴 유물에서<br><strong>기원전 1040년 경을 전후로 상나라에서 주나라로 </strong><br><strong>유물의 교체가 진행</strong>되기 때문이죠</p>
<p>주나라 청동기가 상나라와 다른 특징은<br><strong>청동기와 유물에 다양한 명문을 새겨 기록을 남겼다</strong>는 것입니다<br>명문에도 그 시기 왕조가 교체되었음을 전합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656ac1881280eafa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(목야대전을 기록한 주나라 시기 토기)</p>
<p>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 시킨 목야대전 기록은<br>무려 한국에도 그 관련 유물이 있습니다.<br>집에서 보관하던 중국산 화병인 줄 알았는데<br>알고 보니까 목야 대전의 내용을 기록한 토기였다!<br>이게 국내에서도 발견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죠</p>
<p>연대 측정과 같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논쟁이 있지만<br>학계에선 상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등장한 시기를<br><strong>대략 기원전 11세기 경 즈음</strong>이라고<br>대충 편하게 때려 맞추며 이야기 합니다.</p>
<p>전설에 따르면 주나라는 조상님 고공단보 시절에<br>삼국지 제갈량이 출사표 던지고 나간 땅인 "기산" 근처<br>"주원 (周原)"이란 곳에 처음 정착을 했다고 합니다.</p>
<p>'주원'이란 지명 자체가 주나라 근원이란 뜻이니<br>당연히 원래의 땅 이름은 아닐 것이고<br>아마 주나라가 발원 한 후 훗날에 붙여진 지명이겠죠<br><strong>주인(周人) 주족(周族)이 건국 한 나라라는 뜻으로</strong><br><strong>이름이 주나라인 것입니다.</strong></p>
<p>뭔가 특이하죠 상나라를 '은'이라 부르듯<br>보통은 지명으로 그 국명을 부르는데<br>여긴 지명이 아니라 종족명이네요?</p>
<p>네. 일단 주나라를 세운 사람들은<br>기존의 중국 대륙에 살던 사람이 아닙니다.</p>
<p>----<br>시경의 <대아.면>에는 주나라 초기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<br>“*古公亶父(고공단보), 陶復陶穴(도복도혈), 未有家室(미유가실)<br>古公亶父(고공단보) 來朝走馬(내조주마), 率西水滸(솔서수호), 至於歧下(지어기사)”<br>: 고공단보께서, 토굴 파고 지내셨도다, 아직 집이 없어서라네<br>고공단보께서 일지기 말을 달려오시어 서쪽의 칠수가에서부터, 기산 밑에까지 이르시었다<br>---</p>
<p><strong>주나라사람은 아마 유목민족이었을 것이고</strong><br><strong>말을 타고 이동하여 서쪽에 정착</strong>한 것이다.<br>즉 서쪽에서 넘어 온 오랑캐라고 나오죠.</p>
<p>때문에 다양한 상상력이 튀어 나오곤 합니다<br>주나라 사람을 백인 계통 유목민이다 보는거죠.<br>왠지 흥미롭고 그럴듯 하죠.</p>
<p>서쪽에서 왔으니 주나라는 백인 유목민이다<br>이걸 또 그냥 뇌피셜로 주장하는게 아니라<br>나름 고고학적 유물과 함께 주장합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8e55b20952fb7b76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은허에서 발굴 된 청동인면상입니다.<br>무릎 꿇고 눈깔 깐거 보니까 (상나라 이야기 참조)<br>아마도 제물로 곧 죽을 사람인가 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b489ccd6cf4b145d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반면 주나라 유적에서 나온 주나라 청동인면상입니다.<br>이렇게 둘이 비교해 보면 진짜로 확 다르죠!</p>
<p>상나라 사람은 눈이 작고 눈깔을 파낸..<br>주나라 사람들은 눈이 크고 코도 높은 것이<br>진짜 꼭 서양에서 온 백인 같습니다.</p>
<p>이를 두고 서역에서 온 아리아인 어쩌고<br>일종의 판타지가 종종 만들어집니다<br>근데 개인적으로 그냥 전부 억지라고 봅니다<br>그럼 다음 사진을 보죠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e2bd8e23e3975bbb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진나라 병마용의 용사 상입니다<br>똑같은 모양으로 제작된 인형이 없다고 할 정도로<br>디테일 한 묘사로 유명한 인형이죠</p>
<p>이런 유물을 외관을 두고<br>단지 주관적 인상 따위로 인종을 구분하면<br>병마용에 나온 사람들도 전부 백인, 아랍인<br>아니지 멕시코인으로 볼 수 있겠네요<br>보세요 콧수염 큰 코를 보면<br>칠리 소스랑 타코 겁나 잘 먹게 생겼죠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e628b08e715f0e16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이건 상나라와 같은 시기에 존재한 문명으로<br>지금의 사천성(촉나라) 삼성퇴에서 발견 된<br>유명한 청동인면상입니다.</p>
<p>상나라와 전혀 다른 문명이며<br>동시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황하 문명 이외에도<br>여러 문명이 동시대 공존했음을 증명하는 대표 유적입니다.<br>(심지어 요하 문명의 경우 황하문명 보다 오래되었죠)</p>
<p>이것도 주관적 인상 비평에 의지해 추론하면<br>당시 사천 촉나라 지역에는 외계인이 살았었나 봅니다??</p>
<p>말씀드리면 유물에 나온 형상은 그냥 상징인 것이고<br>주관적 감상은 결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<br>이따금 고대사 영역에서 고고학 유물을 두고<br>상상력을 펼치다 주화입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e0e19e0d1defde57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한국의 경우 신라 기마 인형을 두고도<br>이런 종류의 주관적인 인상 비평이 많습니다.<br>신라의 경우도 신라 흉노기원설과 연계해<br>토기의 코가 서양인 처럼 큰 것은 북방 유목민이기 때문이다<br>등등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.</p>
<p>특히 조심해야 하는 게 이런 것이죠<br>그냥 전부 현대인의 상상력일 뿐이고<br><strong>정확히 말하면 "알 수 없다" 입니다.</strong></p>
<p>다시 본문으로 와서<br>이주민 출신인 주족은 발원지? 주원에서<br>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와서 지금의 시안 부근인<br>풍읍(풍경)에 자리를 잡습니다<br>스스로 서백(西伯)'서쪽 백작'이라 하였고<br>나중에 바로 옆 호경으로 천도하였죠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84b5d65dace0c10f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전부 <strong>오늘날 시안 부근의 관중평야 지역</strong>입니다</p>
<p>주나라가 상나라와 다른 큰 차이점은<br>상나라가 약탈, 사냥에 의존한 원시농경 국가였다면<br>똑같은 도시 국가 수준이지만<br><strong>주나라는 본격적인 관개 농경을 한 국가</strong>란 것입니다.</p>
<p>기록에 따르면 주나라는 자신들의 시조를<br>농업의 신인 후직(后稷)이라 하였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3c9dd30e0831fea1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과거 한국을 포함 농경 국가의 왕조는<br>모두 사직단에서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습니다<br>서울에 있는 사직 공원이 바로 그 흔적입니다.</p>
<p>종묘와 사직을 지키자! 엄근진하게 외칠 때</p>
<p><strong>그 사직이 토지의 신 사(社)와 곡식의 신 직(稷)을 말하고 </strong><br><strong>여기서 직(稷)이 바로 곡식 농사를 처음 알려줬다는 </strong><br><strong>주나라 농사의 신 후직을 말합니다. </strong></p>
<p>바로 주나라 시조입니다.</p>
<p>이런 신화는 주나라의 성격을 분명히 알려줍니다<br>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황하를 이용한<br>본격적인 농경 국가의 등장은 주나라 부터란 것이죠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5cb9d27c105925da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위 지도가 그 유명한 황토고원의 관중평야입니다.</p>
<p>주나라가 자리 잡은 호경이 위치한 지역이죠<br>동으로 함곡관이란 험준한 관문이 있고<br>남으로는 진령산맥이 가로막고 있으며<br>서로는 진산과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고<br>북으로 초원지대로 연결하는 황토지대와<br>다시 엄청난 규모의 숲이 있었습니다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2128a8b32ce532d8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주나라의 첫 정착지인 '풍경'과<br>무왕이 천도 한 서주시대의 '호경'은<br>전부 지금의 시안시 주변에 위치한<br>역대 왕조가 장안이라 부른 지역에 있었습니다.</p>
<p>이 중요한 관중 평야에 자리 잡은 왕조들은<br>모두 제국이 되었고 크게 성장했죠</p>
<p>관중 평야가 훗날 제국을 세운 기름진 옥토가 된 건<br>수백 년 후 전국시대 진나라 시절에 가서야 이뤄진<br>대대적인 관개 시설 정비 사업 덕분이고<br>주나라 시절에는 여전히 반농 반유의 경제를 유지하는<br>황하 범람에 의존한 기초 농업 단계였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981b2f3f2e0c429a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이 지역은 거대한 황하가 만든 주변의 황토 지대로<br>주기적으로 황하의 범람과 쓸림이 반복되면서<br>숲이 아닌 평야 지대가 형성된 지역입니다</p>
<p>이 시절은 또한 국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<br>자연적 여건이 허용하는 한 다양한 민족의 이동이 있던 때죠<br><strong>농경 민족이 우세할 때는 관개농업을 하며 농사를 지었고</strong><br><strong>유목민족이 우세할 때는 가축을 풀어서 유목을 했습니다 </strong></p>
<p>실제 고고학적으로 관중지역에서 이 시기 발굴 되는 유적에는<br>농경 다음 유목 다시 농경이 나오며 번갈아 순서로<br>유목과 농경이 주기적으로 교체된 흔적이 나옵니다</p>
<p>주나라는 유목 문화, 농경문화의 접경지에서<br>주변의 이런 유목민과의 투쟁을 통해 성장했습니다.<br>전쟁을 통해 농경 정착지를 지키고 확장하며<br>농업을 본격적으로 정착 시킨 국가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9ad187c1ae5d4abe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위의 그림은 유명한 정전제(井田制)입니다.</p>
<p>주나라 시절에 시행 된 농업 경제 제도로<br>후대에 나오는 당나라의 정전제(丁田)와는 다른 개념입니다<br>우물 정(井)자로 땅을 9등분 하여 8개의 사전을 나눠주고<br>가운데 공전을 함께 농사지어 공전을 왕에게 세금을 냈다는<br>아주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토지 제도죠</p>
<p>세금을 따로 안내고 백성들이 함께 농사지어<br>공동 농장 처럼 왕의 땅을 대신 경작했다고 하니<br>일종의 공산주의? 를 보는 듯 하기도 합니다.</p>
<p>사실 공전이니 사전이니?? 하는 건<br>우리에게 낯설은 용어가 아닙니다<br>네 우리가 입시 공부하며 한국사에서 배운<br>조선 시대 공전과 사전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</p>
<p><strong>조선 왕조는 주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여기며 </strong><br><strong>이를 모방해 현실 유교 국가를 구현하겠다고 만든 나라</strong>죠</p>
<p>조선은 주나라 정전제를 그대로 시행은 못했지만<br>대신 비스무리하게 정전제를 적용했으니<br>경기도 토지를 공전으로 그 외 토지를 사전으로 정한<br>과전법이 바로 이 개념의 일부 가져온 것입니다.<br>물론 살짝 변형해서 이름만 공전이고 사전이고<br>주나라와 다르게 죄다 백성 수탈 하며 뜯어먹었다는<br>약간의 사소한 차이점이 있습니다</p>
<p><strong>기록에 나오는 주나라 정전제가 진짜 시행된 제도인지는 </strong><br><strong>지금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. </strong></p>
<p>다만 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건.<br><strong>1. 주나라는 농업중심의 국가였다.</strong><br><strong>2. 주나라는 정전(井田)이란 개념을 알듯 경지를 정리하는 관개 농업을 했다.</strong><br>정도입니다.</p>
<p>그리고 이런식의 농업에 올인 하는 고대 국가의 경우<br>평화로운 방식의 주변 통치가 가능하단 장점이 있습니다.</p>
<p>상나라의 경우 부족한 농업 생산력을 보충하기 위해<br>반드시 주기적인 주변부 약탈과 살인을 필요로 했지만<br>농업 국가인 주나라는 안 그랬거든요<br>전쟁 보다 중요한 게 사실 치수 사업이고 노동력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fb80a746eb84105e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(하나라 궁전? 유적 복원 모형)</p>
<p>앞서 연재 한 상나라 이야기에서<br>하(夏)나라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하며<br>그 왕조는 아마도 주나라의 정통성을 위해<br>주나라가 창작했을 것이다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.</p>
<p>일단 기록에 나온 하 왕조의 시조는 우임금으로<br>황하의 치수사업을 통해 왕이 된 인물입니다.</p>
<p>어라? 뭔가 익숙한 스토리죠</p>
<p>또한 황하 서안 지역에 정착하여<br>농업으로 첫 왕조를 세운 인물입니다</p>
<p>어라? 뭔가 익숙한 스토리죠</p>
<p>당시 관중 평야 지역은 서쪽 변방으로<br>기존 중국 문명의 땅이 아니었고<br>주나라는 서쪽에서 온 오랑캐에 불과했지만<br>하 왕조라는 새로운 창작 신화로 인하여</p>
<p>1. 서쪽 관중 지역도 중국 문명의 땅이다<br>2. 상나라가 하나라를 멸망 시켰듯<br>주나라도 상나라를 멸망 시킨 것이다</p>
<p>이런 당위성이 부여가 됩니다.</p>
<p>역사책에 나오는 하나라와 상나라의 마지막 역시<br>하나라의 말희, 상나라의 달기 이야기 처럼<br>ctrl + c + v 복사 붙여넣기 마냥 똑같은 이유죠</p>
<p>더불어 중원 지역을 화하의 땅이라 여기고<br>주변의 사방을 오랑캐의 땅이라 여기는<br>이런 이념적인 화이사상 정의와 구분도<br>모두 주나라 이후에 등장한 것이니<br>딱 나까지만 문명 나머진 오랑캐! 이런 논리가 되죠</p>
<p><strong>하 왕조 신화는 주나라 건국 후 </strong><br><strong>상당 기간이 흐른 후 의도적으로 만들어 진</strong><br><strong>다분히 정치적인 창작 설화가 아닌가 추정 합니다 </strong></p>
<p>일단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힘은<br>상나라의 약탈과 폭력을 못 견딘<br>주변 이민족과 연합해 달성한 것이라 봅니다.</p>
<p>역사책에 나오는 주나라 문왕에 대한 각종 핍박<br>그리고 상나라 주왕의 폭정과 잔인함의 내용 등이<br>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기록이겠죠</p>
<p>주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동쪽으로 진격해<br>상나라를 멸하고 막대한 영토를 얻었습니다.<br>당연히 도시 국가 수준에 불과한 주나라는<br>이런 넓은 지역을 다스릴 능력이 없습니다<br>중앙 집권 제도와 같은 광역 행정 시스템을<br>아직 인류가 발명 하기 전의 일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62973ce1e523a1b3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또한 이 시절의 도시와 도시들 여러 성읍들은<br>그 사이에 자리 잡은 거대한 숲과 정글로<br>서로가 떨어져 있는 일종의 점과 같은 지역들이죠</p>
<p><strong>청동기 시절의 도구는 석기와 목기입니다. </strong><br><strong>돌과 나무로 큰 나무를 벌목 할 수 가 없죠 </strong><br><strong>당시 인류는 큰 숲을 개간할 수 없었습니다. </strong><br>도시를 연결하는 길은 자연이 만든 길입니다</p>
<p>때문에 각 중요 지점들에 주나라 출신의<br><strong>가족, 친척들을 봉작해서 각자 다스리게 했으니</strong></p>
<p><strong>주나라 봉건제라고 합니다.</strong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45d2891e94719d78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60896c08461f27cf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고대 국가는 모두 이런식의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고<br>다시 도시 국가를 연결하는 봉건제 형식을 취하며<br>점진적으로 광역 국가로 나아가게 됩니다.</p>
<p>상나라도 일종의 봉건제를 실시 했고<br>이후 서양에서도 중세에 봉건제를 실시했는데<br><strong>주나라의 봉건제가 이들과 다른 차이점은 </strong><br><strong>주나라는 죄다 가족들이라는 것입니다</strong>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56f039f9bc29893d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0c1721439b9ec29e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왕에서 부터 제후에 이르기 까지<br>적자는 대종으로 그 외는 소종으로 삼고<br>소종도 다시 대종과 소종으로 나뉘며 세분화 되어<br>체계적으로 혈연이 지역 전체로 상호 이어 집니다.<br>이런 종법제도 개념은 가족 안에서 큰집과 작은집을 구분하며<br>지금도 족보를 확인하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제도죠</p>
<p><strong>서양의 봉건제가 봉사를 약속하는 쌍무계약 관계라면 </strong><br><strong>주나라의 봉건제는 혈연적 유대감으로 이뤄진 관계조</strong><br><strong>이 혈연 관계를 예법으로 제도화 한 것이 </strong><br><strong>"종법제도"입니다 지역을 통치하는 방식이죠</strong></p>
<p>이와 비슷한 봉건제 사례가 러시아에서 나타납니다<br>러시아의 류릭왕조 혈통 공후들이 그러합니다.<br>키예프 루시 성립 후 루스지역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<br>같은 류릭 혈통이란 관념을 모두가 공유하며<br>러시아 광활한 토지의 통치를 하였던 시기가 있죠<br>물론 진짜로 이들이 혈연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.<br>각 지역으로 분파된 주나라 문화권 국가들이<br>자신들을 같은 혈연 같은 동류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<br>중화와 이민족의 구분도 주나라 시절 자리 잡게 됩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562d8f3cb9434a05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62c398a15d555cd8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귀하신 혈연 지배층은 정복자로 성을 쌓아 성읍에 살고<br>피지배층은 성밖에 살며 빵셔틀이 되죠</p>
<p><strong>도시 성읍(城邑)에 살면 그게 국인(國人)이고</strong><br><strong>도시 밖에 살면 그게 야인(野人)입니다</strong></p>
<p>이 당시 국민은 성안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.<br>도시 국가로 주로 토성으로 구축한 성읍 안에는<br>대부를 비롯한 사인(士人)들이 살며<br>유사 시에 전차를 타고 전쟁에 나가곤 했습니다.</p>
<p>이들은 평소 육예(六藝)라고 하여 문무를 익히는게<br>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일종의 사인 계층 의무였습니다.<br>서양의 기사들 처럼 말입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f3b73fb8791d1535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이렇게요</p>
<p>한편 국가의 국력을 위 그림에 나오는<br>수레의 숫자로 나눴다는 말이 있습니다.</p>
<p>천자인 왕의 경우 만승(萬乘)지국<br>제후의 경우 천승(千乘)지국<br>대부의 경우 백승(百乘)지국이라 부릅니다.</p>
<p>물론 진짜로 수레가 만대가 있단 말이 아닙니다<br>무슨 수레 1대당 보조인원이 8명이네 어쩌고 하며<br>당시 군사력의 숫자 어쩌고 뇌절 하는 경우가 있는데<br>전부 의미없는 삽질입니다 그냥 일종의 관용어구죠.</p>
<p>천자인 황제는 만(萬)이란 숫자로<br>제후는 천(千)이란 숫자로 표현한 것으로<br>주나라가 아닌 전국시대 맹자의 기록에 나온 말입니다.<br>의미는 그냥 그만큼 중요하고 많다는 뜻이죠</p>
<p>비슷한 관용구로 삼천(三千)이란 말이 있습니다<br>고대 기록이나 표현에서는 관용적으로<br>그냥 무지 많다는 보통 "삼천"이라 표현합니다.<br>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대표적이죠<br>진짜로 의자왕이 삼천명의 궁녀를 두었다고<br>단순히 이해하면 큰일 납니다.<br>해당 기록은 문학 '시'에서 나왔어요<br>당연히 '많다' 라는 "형용사"입니다.</p>
<p>예를 들어 할리 아재가 "뚝배기 억수로 맛있네예~"했다고<br>진짜로 뚝배기를 1억번 먹었다고 계산하며<br>"아니! 이렇게 먹다니 미쳤네..마약을 진짜로 했군..."<br>이딴 결론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.</p>
<p>다시 돌아와 주나라 이야길 계속하면</p>
<p>상나라를 정복하고 이런 통치체제를 세운 주나라는<br><strong>상나라와는 근본부터 전혀 다른 나라였습니다</strong><br><strong>민족이 다르단 건 앞서 말했고 당연히 언어도 달랐습니다.</strong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4af47351c84f4a5b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오늘날 상나라와 주나라 기록을 담은<br>상서(尙書)를 지금도 번역 하는게 힘든 이유가<br>상나라와 주나라가 같은 상형자를 썼음에도<br>두 기록은 그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.</p>
<p>같은 이유로 갑골문 역시 해독하는데<br>과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.<br>갑골문의 해석을 주나라의 갑골문 격인<br>금문(金文)을 통해서 해석 하거든요.</p>
<p><strong>주나라와 상나라는 서로 모시는 신(神)도 달랐습니다. </strong><br><strong>주나라가 상나라를 멸하고 이를 교체를 했습니다.</strong></p>
<p>상나라 시기 나오는 갑골문에 따르면<br><strong>상나라가 섬기는 신은 제(帝)입니다</strong><br><strong>과거에 죽은 왕들이 곧 신이 되는 개념입니다.</strong><br>이들이 워낙 영험 하여 후손들에게 영향을 끼치니<br>명절 마다 조상님 제삿상에 인신공양을 올립니다<br>때문에 상나라의 왕은 왕인 동시에 신으로<br>일종의 제정 일치의 신정 국가였다고 여깁니다</p>
<p>어라? 조상신이라는 개념이 어쩐지 익숙하죠<br>유교에서 말하는 조상신 개념 때문입니다.<br>유교를 만든 공자가 바로 상나라 유민 혈통이고<br>공자는 어려서 제사 지내는 것을 즐겨했죠<br>상나라의 예법과 종교는 유교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</p>
<p>반면 주나라의 경우 신神은 사람이 아니라<br>바로 하늘 천(天)입니다<br>레알 농업국가의 위엄이 여기서도 보이죠</p>
<p>때문에 <strong>왕의 존재는 신이 아니라 </strong><br><strong>하늘의 뜻을 대신해 농업을 주관하는 자로 </strong><br><strong>하늘의 아들 즉 천자(天子)인 것입니다</strong></p>
<p>종교적 의미로의 조상님 숭배에서<br>하늘 숭배로 대상이 바뀐 것은 물론<br>주나라 시기에 이르면 제정일치의 사회를 탈피해<br>인문적인 가치와 이성, 정치 이념을 담은 것으로<br>보다 발전된 사회가 구축되었단 뜻입니다</p>
<p>구정의 신화도 그래서 나오죠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b2607d49d062c7b0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천자는 천하를 주관하기에<br>천하를 9개로 나눠서 그 지역을 상징하는<br>아홉개의 솥을 두어 국가의 보물로 삼았습니다<br>이를 구정(九鼎)이라 합니다</p>
<p>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기록으로<br>구정이 하나라 시절 만들어진 보물이라 하지만<br>당연히 구라고 아마도 춘추, 전국시대 즈음<br>창작되어 유포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</p>
<p>각각의 표면에는 지역의 지…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06-38288dc2ff482243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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