::html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e2a2d575dffba9ed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먼저 배경부터 알아보자</p>
<p>조선 후기에는 산송이라는 게 있었음</p>
<p>말 그대로 산을 두고 하는 소송인데,</p>
<p>조상 묘 자리 싸움임.</p>
<p>이게 어느 정도였냐?</p>
<p>산송은 노비소송,토지소송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소송으로 꼽힐 정도였고,</p>
<p>규장각 소장 소지 문서 5천여 건 중 산송 관련 문서가 거의 40%에 육박한다고 함</p>
<p>조선 후기 민사분쟁의 메인 콘텐츠라고 봐도 됨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e0105359aa114d52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현대인 기준으로 보면 이럴 수 있음</p>
<p>아니 묘 하나 때문에 왜 집안끼리 몇 년씩 싸움??</p>
<p>근데 조선 기준에선 묘가 단순한 무덤이 아니었음</p>
<p>조상 효도 + 가문 명예 + 풍수 + <strong>선산 소유권(이게 존나 중요)</strong> + 지역 체면이 한 번에 걸린 물건임</p>
<p>조선 후기에는 조상 묘를 지키는 범위가 법으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는데,</p>
<p>현실에서는 수호 범위가 점점 넓어졌음 문제는 이 범위가 딱 자로 잰 것처럼 명확하지 않아서,</p>
<p><strong>여기부터 우리 산임</strong></p>
<p><strong>아닌데 여기도 우리 구역인데?</strong></p>
<p>하면서 개싸움이 벌어진 거고</p>
<p>여기서 밀리면</p>
<p><strong>땅도 뺏기고</strong></p>
<p><strong>엌ㅋㅋ 저새끼 조상님 묫자리 뺏긴 좆밥가문 아니냐 ㅋㅋㅋ</strong></p>
<p>소리 듣는거임</p>
<p>이러다 보니 정상적인 재판으로 끝날 수가 없었음</p>
<p>자 이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0ea19dfcfd37c040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때는 1807년, 순조 7년.</p>
<p>경상도 선산 지역에 노상추 집안,</p>
<p>즉 안강 노씨 가문의 세장지가 있었음</p>
<p>세장지는 쉽게 말하면 대대로 조상 묘를 써온 집안 묘역임.</p>
<p>근데 여기 구조가 좀 복잡함</p>
<p>노씨 집안 선산에 예전에 사위 계열인 이씨 집안이 묘를 쓰고,</p>
<p>또 그 이씨 쪽 외손 계열인 박씨 집안도 묘를 쓰면서,</p>
<p>세 집안 묘역이 옆에 붙어 있는 상태였음</p>
<p>설명하니까 좀 복잡한데 대충 말하면</p>
<p>서로 경계 정해서 여기까진 우리, 저기까진 너희 하고 살던 구조였다고 보면 됨</p>
<p>그런데 박춘로가 자기 어머니를 노씨 집안 묫자리의 대안지처에 묻음</p>
<p>대안지처는 대충 묘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중요한 자리 정도로 보면 됨</p>
<p>노씨 입장에서는 이거임</p>
<p><strong>야 이 새끼야, 거긴 우리 조상님 앞마당 뷰 자리잖아</strong></p>
<p>박춘로 입장은 달랐음</p>
<p><strong>아닌데? 우리 박씨도 여기 세장지 관련 있음 우리도 쓸 수 있음.</strong></p>
<p>노씨 집안은 바로 소송을 냄</p>
<p><strong>이거 투장입니다 남의 분산에 허락 없이 묘 쓴 겁니다 파내게 해주십시오</strong></p>
<p>이게 왜 문제냐면</p>
<p><strong>우리 집안이 대대로 쓰던 가족묘역,선산이 있음</strong></p>
<p><strong>근데 친척의 친척 사람이 와서</strong></p>
<p><strong>‘우리도 관련 있잖아?’ 하면서</strong></p>
<p><strong>정면 좋은 자리에 묘를 박음</strong></p>
<p><strong>이걸 인정하면 앞으로 그쪽 집안도</strong></p>
<p><strong>‘여기 우리 구역’이라고 주장할 빌미가 생김</strong></p>
<p>여기까지 보면 그냥 조선판 선산 알박기 사건임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51b9c09451338b57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이 사건의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고 해결법도 존나 쉬웠음</p>
<p>박춘로가 쓴 묘를 투장묘로 보고 파내면 끝나는 사건이었음</p>
<p>그런데 여기서 조선 산송 특유의 병신스런 시스템이 발동함</p>
<p><strong>박춘로가 그냥 버팀</strong></p>
<p>그냥 조금 버틴 게 아님</p>
<p>수개월 동안 옥에 갇히는 걸 감수하면서도 묘를 이장하지 않음</p>
<p>현대식으로 치면</p>
<p><strong>불법주차 맞음 견인 대상 맞음</strong></p>
<p><strong>근데 차주가 차 안 뺌</strong></p>
<p><strong>견인차는 안 옴</strong></p>
<p><strong>신고자는 계속 민원 넣음</strong></p>
<p><strong>차주는 벌금 맞으면서도 버팀</strong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83f14021af5f2f12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여기가 진짜 골때리는 건데</p>
<p>이게 문제가, 상대 묘가 불법 투장묘라고 해도 내가 직접 파내면 불법임</p>
<p>조선에서는 관의 허락 없이 남의 분묘를 파내거나 훼손하는 걸 사굴이라고 했는데, 이게 살인죄에 준하는 중죄였음</p>
<p>그래서 묘자리 스틸한놈이 패소해도 묘를 안 파내고 버티면</p>
<p>관에서 직접 파내주지 않는 이상 피해자 쪽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음</p>
<p>그러니까 대충 이랬다는거임</p>
<p><strong>노상추:이 묘 불법인거 맞죠?</strong></p>
<p><strong>관아:네 불법인거 확인되쓰요</strong></p>
<p><strong>노상추:그럼 파내도 되죠?</strong></p>
<p><strong>관아:니가 파내면 범죄임</strong></p>
<p><strong>노상추:그럼 관에서 파내주세요</strong></p>
<p><strong>관아:검토하겠음</strong></p>
<p><strong>노상추:언제요?</strong></p>
<p><strong>관아:언젠가? ㅋㅋㅋㅋㅋㅋ</strong></p>
<p>이게 조선 산송의 정신나간 구조임</p>
<p>소송을 이겨도 집행이 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음</p>
<p>판결문은 받았는데 강제집행이 안 되는 상황임</p>
<p>심지어 상대가 야 나 존버탄다 ㅋㅋㅋㅋ 모드로 나오면 답이 없음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927cb7ef1de67f84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노씨 집안은 향촌에서 소송을 했고,</p>
<p>선산부사,관찰사,암행어사까지 거치며 1년 넘게 질질 끌림</p>
<p>그래도 묘가 안 파임</p>
<p>결국 노씨 집안은 최후의 선택을 함</p>
<p><strong>지방 관아 못 믿겠다</strong></p>
<p><strong>서울 가서 임금님한테 직접 민원 넣는다</strong></p>
<p>이게 상언, 격쟁인데</p>
<p>상언은 임금에게 올리는 청원서 같은 거고,</p>
<p>격쟁은 임금 행차 때 징이나 꽹과리 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거라 보면 됨</p>
<p>여튼 그후</p>
<p>1808년 3월부터 1811년 4월까지</p>
<p>약 2년 동안 노씨 집안은</p>
<p>상언 5회,</p>
<p>격쟁 2회,</p>
<p>총 7차례나 시도했고,</p>
<p>박춘로 쪽도 2차례 격쟁을 시도함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13dcfeb7071b12e9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여기서 웃긴점은 계속 민원 넣다가 노상추 쪽이 역으로 찍힌거임</p>
<p>노씨 집안은 향촌 소송에서 승소했음</p>
<p>근데 묘는 못 파냄</p>
<p>그래서 계속 상언, 격쟁을 계속 함</p>
<p>그랬더니 나중에는 오히려 노씨 쪽이 비리건송으로 몰리게 됨</p>
<p>비리건송은 쉽게 말하면,</p>
<p>말도 안 되는 소송을 억지로 계속 끌고 감</p>
<p>이라는 죄목임</p>
<p>결국 노상추는 묘도 못 파낸 채,</p>
<p>오히려 의금부에 갇히는 상황까지 감</p>
<p><strong>1.남의 선산에 묘 씀</strong></p>
<p><strong>2.노씨가 소송 냄</strong></p>
<p><strong>3.노씨가 이김</strong></p>
<p><strong>4.근데 상대가 안 뺌</strong></p>
<p><strong>5.노씨가 계속 민원 넣음</strong></p>
<p><strong>6.관아: 아 그만 좀 해 씨발</strong></p>
<p><strong>7. 노씨: 아니 우리가 소송 이겼다니까요?? 빨리 묘 치워주세요</strong></p>
<p><strong>8. 관아: 알빠노? 너 비리건송 깜빵 ㄱㄱ</strong></p>
<p>이지랄이 난거임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5197aa57993ad564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이런일이 왜 벌어졌나면</p>
<p><strong>1. 산송은 한번 지면 리스크가 너무 큼</strong></p>
<p>묘는 그냥 묘지가 아니라 조상과 가문 명예, 땅 소유권 문제라서, 한 번 붙으면 쉽게 못 물러남</p>
<p>조선 후기 산송은 패소해도 정소자를 바꿔가며 계속 소송하는 경우가 많았고,</p>
<p>심하면 대를 이어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음</p>
<p><strong>2. 집행이 약함</strong></p>
<p>상대 묘가 불법이어도 직접 파내면 사굴죄가 됨</p>
<p>결국 관이 직접 나서서 관굴해줘야 하는데,</p>
<p>관이 미적대면 피해자는 그냥 민원만 계속 넣을 수밖에 없음</p>
<p><strong>3. 상언, 격쟁도 만능이 아님</strong></p>
<p>이 사건 같은 경우엔 상언, 격쟁을 해도 실질 조사는</p>
<p>다시 지방 관찰사·수령 손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했고,</p>
<p>이 과정에서 지방관의 어그로를 끌면 오히려 비리건송으로 몰릴 수 있었음</p>
<p>즉 본사에 민원 넣었는데, 본사가 다시 문제의 그 지점장한테 확인 후 처리 바랍니다 하고 내려보내는 거임</p>
<p>민원 넣은 사람 입장에선 환장하는 거고</p>
<p>지점장 입장에선 본사한테 욕처먹고 내려왔으니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되는거지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812-334b338640fc9698.pn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결말은 좀 울적했음</p>
<p>1811년 4월 19일, 노상추는 산송으로 상언한 일 때문에 한성부에 고소당하고,</p>
<p>경상도 관찰사의 장계와 관련해 의금부에 갇힘</p>
<p>본인 일기에도<strong> 30년 관직 생활 중 공무로 옥에 갇힌 적은 없는데, 사적인 일로 갇히니 원통하다</strong> 라고썼음</p>
<p>그런데 이틀 뒤인 4월 21일, 왕이 가뭄 때문에 죄수들을 대령시키게 하고,</p>
<p>가뭄이 이와 같아 근심스러우니 너희들을 풀어준다라고 말하고 풀어줌</p>
<p>그래서 노상추 갇힌지 이틀만에 석방됨</p>
<p>일기에는<strong> 임금의 은혜에 한없이 감사했다</strong>고..... 쓰지만,</p>
<p>바로 이어서 <strong>산송 문제가 바로잡히지 않았기에 마음은 한없이 울적하였다고</strong> 적어놓음</p>
<p>즉 감옥에서는 나왔는데, 묘 문제는 그대로였다는거</p>
<p>그 뒤 4월 24일, 노상추는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감</p>
<p>승리엔딩이 아니라<strong> 북악을 돌아보며 슬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</strong>고 일기에 썼음</p>
<p>완전 아 씨발… 내가 뭘 한 거지… 허무한 엔딩이었음</p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