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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7563530c29678c29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등자</p>
<p>말 안장에 달아 발을 고정 시키는 도구입니다.<br>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</p>
<p>인류가 말을 활용하는 기마술은<br>등자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<br>획기적인 발명품 중에 하나죠.</p>
<p>만약 등자가 없다면 말 위에 탄 사람은<br>말 위에서 신체를 완전히 고정할 수 없기 때문에<br>작은 충격에도 쉽게 낙마하게 됩니다.</p>
<p>때문에 등자 이전의 승마 기술은<br>장기간에 걸쳐 수련해야 하는 어려운 기술이었고<br>태어나서 말과 함께 자라는 유목민이 아닌 이상<br>평생을 걸쳐서 갈고 닦아 익히는 기술이었습니다</p>
<p>때문에 대부분의 농경 국가는 "전차"를 활용했고<br>기병대는 소수의 귀족이 운용하는 부대거나<br>전차와 보병을 보조하는 정찰용에 한정되었죠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c3506fa2d5c50b7f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(등자의 존재 유무의 차이는 확연합니다. 등자가 없다면 무릎 말을 누르며 고정해야 하지만<br>등자를 활용하여 보다 쉽게 낙마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고 강한 충격도 버티게 됩니다)</p>
<p>등자의 등장으로 승마가 보다 쉬워짐에 따라<br>적은 훈련으로 대규모 기병의 운용이 가능해졌습니다<br>특히 중기병을 이용한 "충격 전술" 사용을<br>보다 쉽고 보편적으로 사용 가능하게 하였죠.</p>
<p>논란은 있지만 유럽에서 중장갑 기사 계급이 탄생한<br>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등자의 전파에서 찾기도 합니다.<br>(*비잔틴의 카탁프락토이 중기병처럼<br>등자가 없음에도 이미 충격기병을 운용하기 시작했죠<br>다만 그걸 위해선 굉장히 빡시고 어렵게 훈련해야 했습니다)</p>
<p>인류가 최초로 등자를 발명한 지역이 어딘가? 는<br>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추정이 있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04970b64c104d58f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04d63ea6921c653c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기원전 2세기경 유물에서 등자가 처음 보입니다.<br>인도 북부에서 출토된 기마 도형에 표현 된 것으로<br>기마 인물이 발을 발걸이에 거는 유사한 형태가 보이죠</p>
<p>등자의 인도 기원설이 주장되는 대표적인 유물입니다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0cf91d162b1d4741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9f1fb8a0cc09b1a2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2세기<br>인도 북부와 그리 멀지 않은 지역, 중국 운남성 지역에서<br>인도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한 형태의 발걸이가 나옵니다.</p>
<p>위 2가지 사례 인도와 운남성의 등자 유물은<br>등자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"발가락 걸이" 입니다.</p>
<p>인도 북부와 운남성 지역의 산악 환경에서<br>언덕이나 산악을 오르고 내릴 때<br>무게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발가락을 걸었던 용도죠.</p>
<p>그 밖에 스키타이와 흉노지역 등 유목지역에서<br>이미 등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지만<br>모두 1930~50년대 논문에서 실물 없이 주장된 것으로<br>"기마술이 이토록 뛰났으니 등자를 사용했을 것이다"<br>라는 추정에 따른 단순 의견을 담은 주장에 불과합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fd3c5c4df9db66e2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dd90772b14bde09e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78b6c6969088d19d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(가장 최근에 발견 된 오나라 정봉의 무덤에서 나온 도기 인형의 외발등자)</p>
<p>발가락 걸이가 아닌 등자와 같은 발걸이 형태는<br>중국의 한나라 시기, 서진, 동진 시기 유물에서 발견됩니다.</p>
<p>외발 등자입니다</p>
<p>말에 오르고 내릴 때 딛기 위해 사용하는<br>말 안장 한쪽에만 달려있는 발 디딤용 도구입니다.<br>우리가 아는 그런 개념의 등자가 아니죠</p>
<p>최근 오나라 정봉 무덤에서 비슷한 외발등자가 나오자<br>기레기 낚시인지 인류 최초의 등자가 50년 앞당겨졌다!<br>그런류의 국뽕 기사를 중국 언론이 퍼트린 바 있습니다</p>
<p>그냥 똑같은 외발 등자입니다.</p>
<p>우리가 논하는 역사적인 등자는<br>말에 단단히 고정 하는게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<br>"철제 등자"를 말합니다.</p>
<p>요서 지방 선비족 유물에서 처음 실물이 발견 됩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efc9b748c2bef23c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5세기경 모용 선비족 유물인 "철제 등자"입니다.<br>북연의 선비족 무덤인 풍소불묘 출토 등자로<br>현재 중국에서 인류 등자의 기원이라고 밀고 있는 유물이죠<br>(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에 나온 선비족 등자가 있음에도<br>중국이 풍소불묘 등자를 유독 미는 이유는 북연이 선비족 땅에 세워진<br>한족 왕조라서 그런게 아닌가...개인적으로 추정해 봅니다)</p>
<p>그리고 놀랍게도</p>
<p>같은 시기 만주와 한반도에서도 철제 등자가 똑같이 발견됩니다.<br>모두 4~5세기경의 유물로 선비족의 출현 시기와 묘하게 겹치면서<br>심지어 종류도 더 다양하고 많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4bfeeb5ae3732f9d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( 철제 등자는 발걸이 윗 연결 부위 길이에 따라 초기 단병등자에서 후기 장병 등자로 점차 발전해 가는데<br>이중 단병 등자는 현재까지는 오직 한국에서만 출토되었습니다)</p>
<p>한국 연구자 중에는 고구려, 신라에서 발견되는 등자가<br>초기 형태의 등자와 발전된 후기 등자가 모두 발견되니<br>한국의 등자가 선비족 계통에서 발견되는 등자 보다 먼저다<br>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.</p>
<p>실제로 가장 빠른 실물 등자는 선비족 전연의 지배영역인<br>중국 안양과 조양에서 4세기 초반에 발견이 됩니다.<br>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 된 등자 보다 시기적으로 더욱 빠르죠<br>선비족 최초 제작설이 좀 더 유력해 보입니다.</p>
<p>정리하면</p>
<p>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"철제 등자" 는<br>동아시아 동북 지방인 선비, 고구려 지역에서<br>기원후 4~5세기경 최초로 등장하였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050b626a430384c2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bf1e288d63e3c110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선비족과 고구려가 치열하게 전쟁하던 시기입니다.</p>
<p>모용 선비족은 고구려와 요동 전선을 두고 맹렬하게 전쟁 했으며<br>심지어 고구려의 수도를 함락하고 불태워 엄청난 피해도 주었죠</p>
<p>강력한 유목 기병대를 이끄는 모용 선비족을 상대하며<br>매번 큰 피해를 보았던 고구려가<br>당시 군대를 중기병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<br>유목민 보다 미숙한 승마술의 단점을 극복하고자<br>"철제 등자"를 적극 수용하여 도입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e0436f482bd60aa3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75d3afd612fcd25c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(고구려 철갑중기병 개마무사 벽화)</p>
<p>이때 만들어진 등자가 "고구려 등자" 입니다.</p>
<p>이 시기 고구려는 철제 등자를 본격 도입했고<br>등자를 활용한 강력한 충격 중기병을 윤용하며<br>철기병의 강력한 위력을 알리게 됩니다.</p>
<p>나아가 이 고구려 양식의 철제 등자를 한반도 남부 지역과<br>북방 유목지역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퍼트렸죠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06e10093d7abe068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9099c46b076a4841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모용 선비족은 탈발 선비족에게 멸망 당했고<br>탁발 선비족은 북중국 지역을 석권하는 강대국이 됩니다.</p>
<p>고구려는 강력한 북위를 견제하기 위하여<br>당시 몽골 초원에 있는 몽골-선비족 계열 유목민<br>유연(柔然) 과 연맹하여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</p>
<p>이 시기 고구려와 유연이 교류를 하면서<br>만주의 풍부한 철을 통한 다양한 철기 제품을 전했고<br>"고구려 등자"가 유연에게 전해졌습니다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e587a2f902ec005f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유연 지역에서 출토 된 유물로 명백하게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<br>고구려 등자와 동일한 "극동형 등자"가 발견됩니다.</p>
<p>당시 유연은 유목 국가로 철기 제작이 어려웠기 때문에<br>속국인 돌궐족, 즉 투르크 인들에게 철기 제작을 의뢰했습니다</p>
<p>일종의 위탁생산을 맡긴 것으로 덕분에 돌궐족은 크게 성장했죠<br>이후 돌궐이 배신을 때리며 거꾸로 유연을 공격했으니<br>결국 유연은 몽골 초원 본거지에서 쫒나게 됩니다.</p>
<p>유연은 더이상 동아시아 지역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판단하고<br>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으니..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88b211f1685f6b81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오늘날 유럽 헝가리 지역에 정착하게 됩니다.</p>
<p>!!!</p>
<p>장장 5,000KM를 이동하여<br>몽골 초원에서 유럽 헝가리까지 피난을 간 것이죠</p>
<p>최근 양 지역에서 발견된 유골 300여구에 대한<br>유전자 정밀 분석을 진행한 결과<br>혈연적으로 완전 동일함이 밝혀졌습니다<br>도중에 어디 다른 지역에서 정착 생활을 했다면 발견 되었을<br>혼혈이나 다른 문화 영향의 흔적조차 없단 것으로<br>매우 단기간에 벌어진 민족 대이동이었단 뜻입니다</p>
<p>이들은 스스로를 "아바르" 라 했습니다.</p>
<p style="text-align:center;margin:12px 0;"><img src="https://kookbob.com/assets/copied/20260618-dc284939892cb4e1.jpg" style="max-width:100%;height:auto;border-radius:6px;"></p>
<p>당시 동유럽과 발칸을 휩쓸면서 비잔틴 제국을 위협한 아바르 제국입니다</p>
<p>동아시아에서 뚜까 맞고 쫒겨난 민족이지만<br>그 지역이 살기 빡신 것 뿐이죠<br>유럽은 기존에 상대하던 북위, 돌궐, 고구려와 비교하면<br>너무 쉬운 애송이 국가들 뿐입니다.<br>그동안의 한을 풀듯 마구 뚜까패며 다녔습니다.</p>
<p>유럽에 보여준 아바르의 능숙한 궁기병 전술과 함께<br>특히 "충격 중기병 전술"은 단 시간에 동유럽 전역을 무너뜨리며<br>유럽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이고 공포스런 인상을 주었습니다</p>
<p>그렇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발명품<br>등자가 아바르족을 통해 유럽에 알려졌으니....</p>
<p>"고구려 등자"가 이때 유럽으로 전파가 되었습니다</p>
<p>고구려의 "철제등자"는 일종의 표준이 되어서<br>동아시아 한반도의 백제, 신라, 가야에도 전파 되었고<br>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에게도 전파 되었으며<br>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유럽에도 전파가 된 것이죠</p>
<p>(현대에 재현 한 고구려 개마 무사의 모습)</p>
<p>(현대에 재현 한 아바르족 무사의 모습...<br>왠지 고구려 개마무사의 냄새가 느껴지죠 그 느낌이 맞습니다. )</p>
<p>아바르가 유럽에 등자를 전수해 줌에 따라<br>유럽의 기병은 중장갑 충격 기병 중심으로 전환 되었으며<br>오랜기간 강도 높은 훈련이나 유목 생활을 안해도<br>좋은 장비와 무기을 유지할 능력만 있으면 가능한 병종이 됩니다</p>
<p>이후 샤를마뉴 대제가 이런 중장갑 기병을 이끌고<br>유럽으로 침공한 이슬람 세력을 격파시키자<br>본격적으로 전쟁의 중심이 된 기사 계급이 탄생하였으니<br>유럽의 중세 봉건제 사회가 만들어 집니다.</p>
<p>어떤분 이에 대한 한 줄 요약을 매우 잘해 주셨더군요<br>----<br>"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역사가 유연을 통해 유라시아 문명사를 바꾸는 거대한 날개짓을 일으켰다."<br>----</p>
<p>마지막으로 이때 아바르족의 활약 덕분에<br>당시 동로마의 역사서에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전해집니다.</p>
<p>-------<br>그곳에서 Avars(아바르)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Taugast(북위)의 공격을 받고 다시 한번 비참하게 몰락하여 Taugast와 동쪽으로 이웃해있는 Mouxri(고구려)로 가 도움을 요청했다.<br>이 Mouxri(고구려)라 불리는 나라의 국민들은, 위험에 대처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일상처럼 행해지는 혹독한 군사훈련으로 그 투지가 매우 높았다.<br>-비잔틴의 역사가 테오필락트 시모카타의 저서 《Historiam》 613년 가록 중 -<br>-------</p>
<p>여기에 나오는 모쿠리가 즉 맥쿠리로<br>유목민들이 고구려를 지칭하던 이름 맥구려(貊句麗)입니다.</p>
<p>유럽에서 기록한 최초의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</p>
<p>끝.</p>